WCG IS MY L(W?)IFE. WorldCyberGames(WCG)

 사내 에세이 공모전에 썼던 글인데 조금은 Off the record해야 할 정보도 있는 것 같지만 다 지나간 일이고 과거는 별로 중요한것이 아니니.. WCG 생활 이제 만 7년 하고도 3개월 .. 그 생활 속의 제 L(w?)ife를 공개합니다.

 

 

WCG IS MY L(W?)IFE.

 

 

 

 

 

 

 

 

 

 

 

 

 

생각해 보면 지난 만7년이 조금 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왜 계속해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수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하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라는 불씨가 타고 있는 것 같다.

WCG에 대한..

 

 

 

 

 

 

 

 

 

 

 

 

 

디지털 솔루션팀

장운봉 과장

삼성의 윤종용 부회장님께서 삼성 그룹에 지시를 하셨다.


게임 올림픽을 추진해보라.”

 

여러 업체에서 경쟁적으로 제안서를 받기 시작했고 삼성 그룹 계열사에 게임 전문가 들을 수소문해서 여러 번 회의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그 때 나는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쉽- SAMSUNG SOFTWARE MEMBERSHIP (이하SSM)에서 개발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삼성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여려 형들이 그 회의에 참석하고 여러가지 의견을 내었다고 했었다.


PC Player
를 출판하던 ㈜ 시공사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WCG Challenge 초청 티켓을 받게 되었고 밤샘 개발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에버랜드에 가서Quake III 결승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존웬델 (Fatality) 이 여자친구가 사준 인형을 모니터 위에 올려두고 경기에 열중하고 승리했을 때 즐거워 했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까지도 나와 WCG가 인연이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WCG
Online Tournament Management Tool을 필요로 했고 그 부분에 있어 나와 같이 일했던 팀이 경험이 있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WCG와 인연을 같이 하게 되었다.

 

기술 개발 연구실 그리고 벤쳐 기업에 익숙했던 노란 머리 , 귀걸이, 찢어진 청바지 , 게임과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 마냥 내 일이 좋았던 철부지 개발자는 조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이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회사였지만 우리의 파격적인 모습에 다들 놀라하는 표정이었고 이내 우리의 젊음의 향기는 사내 곳곳으로 퍼져 갔다.


그로 인해 당시 전명수 과장님도 누나에게 머리를 염색해 달라고 하기 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

그렇게 시작된 WCG와의 인연은 그 젊음의 열기를 뿜어 계속된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일주일에 2-3일은 밤을 새는 강행군 한 끝에 3개월 만에 솔루션 개발이 완료되었다.

 

자체 개발한 Online Game Launcher

MSN에서 서비스중이던 Zone.COM Launcher

이 서비스는 GENIUS (Game Event Network Integrated Utilization System)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WCG 대회 및 웹사이트에 곳곳에 녹아 있다. ( 위 런처 개발을 담당했던 형은 현재 안철수 바이러스 연구소에 있다. )

 

솔루션이 완료가 되고 나서의 우리의 미션은 각 SP GENIUS를 교육을 시키고 GENIUS를 사용하게 만들어야 했다.

태어나서 첫 해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 도착한 모스크바
..
다른 환경과 다른 언어와 나를 움추리게 만드는 모든 것들 속에서 나는 당당해야 했고 나는 내가 가진 미션을 실행했어야만 했다. 그렇게 2년을 러시아 , 스웨덴 , 폴란드 , 네델란드 , 필리핀 , 말레이시아 중국등을 다니면서 내 손으로 개발한 시스템을 설치하고 교육하고 실제로 대회에 쓰이는 것들을 보고 정말 행복했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에게 놀란 적도 있었고 (첫 출장이라서 후덜덜) , 폴란드 삼성에서는 한 차장님과 저녁 식사 중에 강릉고등학교 선배라는 말에 갑자기 입이 얼어버린 일도 있었고 , 네델란드에서는 유럽 최대의 홍등가를 둘러 보기도 했으며 , 말레이시아 SP Poonhs 와는 아직도 절친한 사이이고 ,중국에서는 출장 마지막날 밤을 꼬박 보내 가면서 짧은 영어로 Carlson과 이야기를 했던 소중한 경험들은 WCG가 아니면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도착할 때 까지 무조건 자고 , 시차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현지 음식에 적응력이 빠른 것이 장점이라 이를 비꼬아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진정한 글로벌 인재라고 말한다.”

영어를 잘하고 글로벌 비즈니스 감이 있는 인재가 되어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싶다.


그 시절엔 사내 모든 직원들이 친밀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니고 정말 너무 친해서(?) 문제였던 것 같다. 다들 어렸고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23 ~ 30) 다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강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만 있었다면 지금의 WCG는 더 발전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간혹 들곤 한다.

< 여기 몇가지 회사 문제에 대해서 적었었는데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삭제 >

 

당장 내가 일하는 직장이 없어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삼성이라는 든든한 후원자 , Global 기업 그리고 이벤트 라는 겉모습 속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Global Game Event 라는 분야라는 것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고 구체화 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고 우아하게 호수를 노니는 백조의 물밑 사정처럼 WCG는 계속된 찬사와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의 쾌거를 이루어 왔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은 방향에 대한 문제 , 조직내의 갈등 ,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계속해서 지쳐만 가고 힘들었다. 조직은 방황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야 할 방향을 항해 표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가운데 군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 나는 가지 말자고 나 자신과 약속했던 일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ICM에서 이루게 되었다. 그때 당시 도와 주셨던 많은 분들께 지금도 많이 감사하고 있다.

남들이 군생활이 힘들다고 하고 군생활에서 참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면 내가 ICM에서 군대 생활을 대신하면서 배운 것은 생각하고 설득하고 이루어내는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생각하는 것은 쉽지만 설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군대 생활이 끝나고 나서 남은 마지막 학업 .. 사실 학교는 1학년 벤처를 창업하고 나서 거의 간적이 없었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 , 발표 , 세미나를 통해 학점을 취득하고 있었고 마지막 4학년은 졸업 작품과 졸업 시험만으로 휴가를 모두 소진하면서 마치게 되었다.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WCG에 대한 소개자료 및 동영상을 소개하면서 내가 수업을 듣는 것 대신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설득했어야 했으며 특정 교수님은 관련 업계에 대한 동향 자료를 요구하시기도 하시고 연구 자료에 대한 세미나를 요청하기도 하셨다.

 

당시 교수님들은 WCG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있었던 것 같다.”

한번은 온라인 대회를 진행할 때였는데 갑자기 사용자들이 폭주하고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게임 결과가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72시간을 꼬박 잠을 자지 않고 서 그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원인을 파악했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지금 시간에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해 눈 뜨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결국 그날 이후 대용량 시스템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긴 했지만 지난 7년간 개인적으로는 최대의 굴욕으로 남는 사건이다.

 

 

 

 

 

 

GFGreat Funny 한 행사이여야 했지만 항상 Great Fucking 했다. 항상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고 항상 내 한계를 뛰어넘도록 나를 시험해야 했으며 절망하고 슬퍼해야 했다. 삶의 마지막을 보는 듯한 업무가 항상 산재해 있었다.

 

그 힘든 준비 과정도 개막식을 보고 있노라면 혹은 폐막식때 Highlight 영상을 통해 섬광같이 지나간 GF 기간들에 게이머 들이 즐겁고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으로 손이 가곤 했다. 그래서 꼭 신입으로 들어 오는 사람들에게 GF기간 바쁘더라도 개막식과 폐막식을 꼭 보기를 권유한다.

 

무엇이 나를 감동 시키는 것일까?”

 

한번은 GOSUGAMER 를 운영한다고 하는 스웨덴의 한 심판이 나를 찾았다. GENIUS를 개발한 사람이 누군지 물어 보았고 나를 알려줬던 모양이다. GENIUS를 자신의 커뮤니티에 도입하고 싶고 사고 싶다고 제안했고 파는 제품이 아니고 판다고 해도 가격이 무척이나 비쌀것이라고 말을 했더니만 나에게 귓속말로 스웨덴에 와서 자기랑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 묻기도 하였다.

 

머리속에 가장 많이 기억남는 것은 2005 USA NF ICM에서 진행할 때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에서 WCG를 보았을 때 였다. 삼성 광고 속에 WCG 홍보영상이 짧게 들어 갔고 마지막에 NF를 알리는 자막이 들어간 형태였는데 로테이션되기 때문에 한번 타임을 놓치면 5분여간 기다렸어야 해서 수십 여분 동안 카메라 셧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들

 

“WCG안에 내가 있기 때문에 느끼고 뿌듯해 할 수 있는 것이다. “


시간이 흘러간 만큼 WCG도 성장해 갔다. 이를 위해서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의 MSN 카테고리 ICM-OB 40명이 등록되어 있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치면 8년간 ICM을 거쳐 갔던 사람들은 100명 정도가 될 것 같다. 그 사람들의 노력과 지금 우리의 노력으로 계속해서 WCG는 발전해 가고 있는데 나는 WCG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안에서 나는 너무 정체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만으로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 없다.”

사랑을 동반한 끊임없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자극이 필요하다. “

 

내 사랑에 대한 철학처럼 나 또한 자극을 느끼고 자극에 반응해서 더 열심히 앞으로 열렬히 WCG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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